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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백수 조회 6회 작성일 2020-10-17 22:28:5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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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회에 53만원짜리 겔랑스파 피부관리는 도대체 뭘 해주길래?

회사원입니다! 1회 53만9천원짜리 신라호텔 겔랑스파 피부관리는 도오~대체 뭘 하길래 그렇게 비싼건지 제가 한 번 가봤습니다!
얼굴에 금칠이라도 해 주나...?

촬영에 협조 해 주신 겔랑 스파 관계자 분들 감사합니다.
이 영상은 겔랑 스파의 촬영 협조를 받았을 뿐, 광고영상은 아닙니다. 계산 하고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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JIN 9 : 12:00
방수현 : 2020년도에 보는사람 손
전씨걸 : 이 영상보고 피부관리사라는 꿈을 가진 고딩이 이제 피부 국가를 다 따고 이제 피부미용 대학도 갔는데 다시 보니 감회가 새롭네용...
나는마리모 : 회사원님 검색해서 보고있습니다 이런식으루...
회사원 스파
회사원 1600만원
회사원 호텔
이런식으루 ㅠㅠㅠㅠ
예지 : 2년전부터 왠지모르게 간간히 보고있는데 오늘도 스파시리즈 정주행 중입니다만.. 회사원님은 스파시설의 포근함을 시각 청각으로 전달하고 자극적인 탭핑과 반대의 asmr 보고 듣는 기분... 그중에도 최고는 겔랑입니다.. ㅜㅜ 요새 코로나때매 못봐서 아쉬워요 ㅜㅜ... 화이띵❤️

청담동 피부관리샵 관리 과정 및 후기

청담동 피부관리샵에 대해 궁금하신 분들을 위한
기본 관리 체험 과정을 담은 영상입니다 :)
성도 : 형 인스타 아이디 바꾸셨나봐 안나와유 ㅠㅠ
뷰티앤푸드 : 안녕하세요 반가워요 유친 맺고 감니다 영상 잘밧어요 화이팅 응원 합니다 감사합니다
박카니 : 받으신 가격좀알고싶어요
알ᄅᄅᄅᄅᄅ : 어디에요?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정성현 : 피부과 시술 알아보려는데 형이 여기서 왜나와??;;;

패션뿐만아니라 뷰티까지 섭렵한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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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주 문학관에 들어섰다. 농기구가 가지런히 진열되어 있다. 다들 투박하면서도 고집스러운 그 시대의 사내를 닮았다. 지게 앞에 작대기 하나가 길게 누웠는데, 밑 부분에 뾰족하게 박힌 쇠가 보인다. 지게와 작대기를 보니 평생 짐을 진 아버지의 삶에 가 닿는다.

한국전쟁 때 아버지는 군번도 없이 전장에 배치되었다. 낯선 골짜기에서 전우들이 하나둘 쓰려져도 아버지는 구사일생으로 살아 돌아오셨다. 전쟁이 휩쓸고 간 뒤라서 남은 것이라고는 기근과 상처뿐이었다. 많은 식솔이 먹고살려면 산골짜기 비탈이라도 개간해야 했다. 물길을 따라 일구다 보니 천 평이 될까 말까 한 논이 자그마치 쉰하고도 다섯 다랑이나 되었다.

말이 좋아 논이지 기름진 밭보다 못했다. 계곡 가장자리를 따라 만들었기에 논바닥이라야 함지박만 했다. 가족에게 목숨 줄과 같기에 아버지는 문전옥답으로 여기며 농사를 지었다. 살얼음이 녹기도 전에 못자리를 하고 나서부터 논으로 가는 날이 잦아졌다. 안방보다는 산골짜기가 편한지, 아버지가 논에 가지 않는 날은 밥에 뉘같이 드물었다.

아버지의 지게는 유난스레 높았다. 짐을 많이 싣기 위해, 지겟가지 중간을 가로지르는 까막서리 양쪽으로 다른 막대를 덧대 묶어 높이를 더했다. 그러고는 누렇게 익은 나락을 지게 위에 쌓아올렸다. 우기가 감도는 날이면 베어놓은 나락이 비에 젖을세라 꼭두새벽부터 어두워질 때까지 집과 논을 오갔다. 멀리서 보면, 아버지는 보이지 않고 나락볏가리가 공중에 뜬 채 아슬아슬하게 움직이는 것 같았다.

골짜기에 있는 외딴집이다 보니, 밤마다 빨갱이들이 와서 괴롭혔다. 자칫 자식에게 해를 입힐까봐 아버지는 집을 버리고 큰 마을로 이사하였다. 그리하여 애써 개간한 논과 멀리 떨어지게 되었다. 산모퉁이 몇 개를 돌고 개울을 두 개나 건너야 논에 닿을 수 있었다. 가는 길은 오르막이라서 숨이 턱에 닿아 입에서 단내가 났고, 오는 길은 내리막이라서 산짐승에게 쫓기기라도 하듯 후르르 뛰어 내려왔다. 빈 몸으로 다니기에도 힘든 길이었다. 그런 길에서 나락을 지고 후들후들 다리를 떨던 아버지가 잠시 쉴 때는 지게가 넘어지지 않도록 작대기로 받쳐 놓았다.

아버지는 분답잖게 봄비가 오는 날이면 창고 앞에서 지게 만들기에 열중했다. 끌과 자귀로 뚝딱뚝딱 나무를 다듬는 소리가 늦잠 자는 내게 자장가처럼 들렸다. 지겟가지 두 개를 바로 세워 놓고 중앙에 세장을 붙여 몸체를 맞댔다. 정으로 지게 목발에 구멍을 뚫은 다음, 짚을 물에 축여 꼽꼽해지면 나무망치로 토닥토닥 두드려 등석을 엮어 붙였다. 어깨에 메는 미끈은 긴 머리를 땋듯 정성스레 땋아 지게에 달았다.

지게를 손보고 나면 아버지는 지겟작대기를 만들었다. 위쪽이 가위처럼 벌어진 나무를 골라 아버지의 키에 맞게 잘랐다. 겉을 매끈하게 다듬은 다음 송곳처럼 뾰족한 쇠를 끝 부분에 박았다. 아버지는 빈 지게를 진 채 작대기로 땅을 몇 번 짚어보고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작대기 끝에는 쇠가 들어가도록 둥글게 말아놓은 놀구멍이 없다. 슴베가 잘 들어가게 하는 괴구멍도 파지 않는다. 작대기 끝에 쇠를 박으면 그것이 물미장이다. 호미나 낫에는 힘을 받도록 테두리를 감싸주는 신쇠가 있지만 물미장에는 아무런 치장도 없다. 오직 있는 그대로 꾸밈없이 묵묵하게 삶을 지탱하는 내 아버지처럼.

아버지는 농사일밖에 몰랐다. 땀에 젖은 베적삼에 논 갈고 밭을 갈았다. 동이 트면 아침이 되고 해가 지면 밤이 오듯, 자고새고 하는 일이 지겹지도 않은지 우직하게 일만 하였다. 밤이면 끙끙 앓아도 날이 밝으면 들로 나가는 일벌레가 따로 없었다. 오직 땅만 아는 샌님처럼 땅 한 뙈기 늘이는 일을 최고의 기쁨으로 삼았다. 그런 아버지는 일을 놓으면 밥숟가락을 놓는 것과 같다고 여기셨는지도 모른다.

무거운 짐을 지고 일어날 때 작대기는 요긴했다. 촉이 땅에 쏙 들어가라고 아버지는 작대기에 힘주어 꽂았다. 그런 다음 한 손으로 작대기를 짚고 한 손으로는 지게 목발을 잡고 무릎을 천천히 세웠다. 비탈진 길에서는 작대기로 지탱하며 한 발 두 발 조심스럽게 내디뎠다. 발이 부르트고 다리가 아파도 묵묵히 버틴 아버지에게 지게와 작대기는 한 몸이었다.

아버지는 새벽이슬을 맞으며 길도 아닌 비탈 섶을 넘나들었다. 촉이 박힌 작대기로 땅을 짚으며 산속의 적요를 발걸음으로 사각사각 깨워가던 길. 아버지의 발바닥에 굳은살을 덧대게 한 그 길엔 이제 울울창창 숲이 우거져 있으리라. 산골짜기 하나를 길게 차지했던 논은 주인의 부재를 알까. 여름이면 어김없이 하얀 벼꽃을 피우는지 궁금하다.

가끔 작대기가 사립 안에 있으면, 우리 형제들은 그것으로 마당에 금을 그었다. 반대차기나 땅따먹기를 할 때 몸을 구부리지 않고 금을 그을 수 있었다. 물미장으로 그은 금은 밟아도 여간해서는 지워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었다. 뒷밭에 독사라도 나오면, 화들짝 놀란 어머니는 김을 매다가도 촉이 박힌 작대기를 가져오라고 소리쳤다. 창처럼 뾰족한 물미장에게 죽임을 당한 독사는 개울가에 있는 가시나무에 연 꼬리처럼 걸리기도 했다.

삶을 배우는 데 일생이 걸리고, 죽음을 배우는 데도 그만큼 걸린다고 한다. 사람은 늙어야 사방이 보인다는 성인의 말이 있듯, 머리에 서리가 하얗게 내리고 나서야 아버지를 여러 면에서 볼 수 있었다. 노부모의 장남이었으며, 한 여자의 남편이었고, 여러 식솔을 거느린 가장이었다. 마을에서는 척박한 땅을 억척같이 일궈 옥토로 바꾼 농사꾼이었다. 아버지가 벼슬이 높아 권세를 내세우며 거드름을 피웠다면, 오늘 이처럼 애틋하게 기억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아버지도 아버지이기 전에 평범한 남자였다. 누구에게나 청춘은 소낙비 지나가듯 가버리는 것이고 보면, 아무리 바동거려도 살림에 주름이 펴지지 않으면 다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 않았겠는가. 맛있는 음식을 보면 먹고 싶었을 것이며, 친구들이 요사스런 자리에서 장단에 맞춰 가무를 즐길 때면 왜 휩싸이고 싶지 않았으랴. 약주를 좋아하는 옆집 아저씨처럼 취생몽사로 적당히 살아갈 수도 있었겠지만,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말하지 않는, 삼불주의 三不主義를 지켰기에 오늘의 내가 있다. 그러고 보면 아버지는 가족을 위해서 어떠한 일도 뿌리쳤을 것이다.

철부지 때는 지게를 지고 다니는 아버지를 보고도 아무런 느낌도 들지 않았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아버지를 생각하면 가슴이 찡하다. 내 삶에 있어 이러한 기억의 화첩은 비밀의 유산이 아니었을까 싶다. 살면서 힘든 일에 부닥쳐도 옛 그림을 떠올리며 거뜬히 견뎌낼 수 있었다.

물미장을 가만히 바라본다. 연필심 같은 촉으로 기억을 다시 쓴다. 아득한 풍경이 연막처럼 퍼지다가 복통처럼 가슴을 내리누른다. 아버지의 삶이 납덩이같이 머릿속에 남아 무거운 공기를 타고 서서히 퍼진다. 평평한 일상이 아니라 자신의 뜻과는 상관없이 벼랑에서 피운 삶. 비탈길을 오르고 아찔한 낭떠러지 옆을 조심스레 걸어온 아버지의 삶이 전시관 유리 안에 박제 되어 있다.

오늘 아버지의 삶을 다시 읽는다. 그 시절의 화첩을 몇 장 넘기다가 덮는데, 마음의 골짜기에서 아버지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꾸다 만 꿈처럼 손을 뻗어도 잡히지 않는….

2016년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 당선작
물미장
작가 : 류현승

#명상음악#피아노#뉴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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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임 : 늘 샾에서 틀어놓는데 오늘에야 긴 글을 읽어봤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마음이 뭉클하기도 그림처럼 상상되기도 하네요 ^^
매홍2013매홍2013 : 우연히 우연히~~~~
클릭하다 오랫동안 귀에 담고 있네요.
김미영 : 넘 좋아요
감상잘하고 갑니다
매일들어야겠네요^^^
Jeonghye Son : 넘 좋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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